경영인 정몽헌 | 경영성과

발전된 대한민국을 건설했습니다. 하나된 나라를 열었습니다.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남북 경제협력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정몽헌 회장은 국제 감각을 지닌 전문 경영인이자 검소하고 따뜻한 인품을 지닌 참 경영인이었으며,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다진 민족 기업인이었다.

국제 감각을 지닌 전문 경영인

정몽헌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와 그 맥을 같이 해온 현대그룹 창업자이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업 유지를 이어받아 현대그룹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전자, 상선, 무역, 건설, 서비스, 남북경협사업 등 미래 지향적인 굵직한 사업을 이끌어 온 뛰어난 경영인이다.

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페어리 디킨슨(Fairleigh Dickinson)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정 회장은 다양한 해외활동을 통해 국제감각을 지닌 전문경영인으로 현대그룹의 기업체질 개선에 주력했다.

현대그룹의 중후장대한 사업구조를 첨단사업으로 확대 발전시키고,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 문화를 현대그룹에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.

정 회장이 1980년대 초 전자산업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 일화는 유명하다. 정 회장은 첨단산업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기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며 경기도 이천의 불모지에서 현 하이 닉스 반도체를 설립했다. 그 당시 일본 전자업체의 한 회장은 “건설과 중공업에 익숙한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흑자는 못 볼 것”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정몽헌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경영으로 취임 이후 5년 만인 1989년 첫 흑자를 기록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.

또한 지난 1981년 현대상선 사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현대상선을 국내 최대의 운송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. 특히 정 회장의 사장 재임기간인 81년부터 88년까지 약 8년간은 현대상선이 단시일 내에 국내 최대 종합해운기업으로 급성장한 도약기였다.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져 있던 80 년대에 정 회장은 “불황기에 선박을 건조해 호황기에 대비한다”는 전략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유조선, 벌크선, LNG 수송선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 흑자경영의 기반을 마련했다.

검소하고 따뜻한 인품을 지닌 참 경영인

이런 성장의 과정에서 정 회장은 직원들에게 현대그룹의 새로운 기업문화를 제시했다. 그것이 바로 ‘자율경영’이다.

정 회장은 인간의 능력은 개발하기 나름이어서 경영자는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강조했다. 권한을 부여하되 책임감 또한 강조한 것이다. 오너의 일방적 지시는 회사를 잘 돌아 가게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.

정 회장의 자율경영 체제가 현대그룹 전체의 기업문화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회장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었다. 정 회장은 확고한 기업가 정신과 냉철하고 합리적인 결단력 이면에 가슴 깊은 따뜻한 인품과 곧고 순박한 인간애를 지닌 분이셨다.

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진솔한 모습으로 임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, 업무 후 술잔을 기울이며 구수한 노래 한 자락을 뽑아내며 임직원과 함께 어울렸던 정 회장의 소박함은 현대그룹 임직원들이 새로운 변화와 혁신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인간적인 매력이었다. 또한 정 회장은 허심탄회한 토론을 좋아해 직원들 및 바이어들과 식사할 때 밥 먹는 것도 잊을 만큼 토론에 열중한 적도 있다고 한다. 또 정 회장은 보는 스포츠보다 같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스포츠맨이다. 스키와 골프를 좋아하는 정 회장은 91년 신입사원 단합대회에서 직원들과의 씨름을 하다 인대를 다친 이후 스키보다는 수영과 골프를 즐겨 했다.

정 회장은 선친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아버지의 검소함도 그대로 물려받았다. 현대전자 (현 하이닉스 반도체) 적선동 사옥 시절 낡은 카펫을 교체하려는 총무부 직원들에게 “낡아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지 무슨 새것이냐”라며 나무라기도 했다. 헌 와이셔츠나 구두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.

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다진 민족기업인

정 회장의 이 같은 뛰어난 경영능력과 인간적인 면모가 기억되는 것은 그의 확고한 기업가 정신 때문이다.

정 회장은 “기업이 어느 정도 커지면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”라며, 국가와 민족이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념을 실현해야 한다는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.

사업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기업가의 근본이며, 그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 기업의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가치 제고라고 늘 강조했다. 이 같은 정 회장의 확고한 기업정신은 항상 먼 미래를 내다보고 7천만 온 겨레가 다 함께 잘 살아가는 통일경제를 추구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북사업관의 큰 뜻과 그 맥을 같이 했다.

정 회장은 전 세계인을 깜짝 놀래킨 정주영 명예회장의 1998년 6월 16일 소떼몰이 방북에 이어, 1998년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관광선 운항, 1999년 9월 남북통일농구대회, 2003년 2월 금강산 육로관광, 같은 해 6월 개성공단 착공식 등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면서 본격적인 남북경협시대를 열었다.

특히 정 회장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분위기를 정착하고 민족화해와 협력을 위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주선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었다.

정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난 1998년 10월, 1999년 9월, 2000년 6월, 2000년 8월, 2000년 9월 등 총 5차례 만나면서 금강산관광사업, 개성공단사업, 류경정주영체육관사업, 철도, 통신 등 대북SOC사업과 같은 굵직한 민간급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해왔으며, 그 후에도 수 십 차례 북경, 금강산, 평양, 개성 등을 오가면서 북측과 남북경협사업에 생의 마지막 투혼을 발휘했다.